설탕에 유통기한이 없는 이유,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미생물이 살 수 없는 ‘수분활성도’라는 과학적 원리와 함께 올바른 설탕 보관 방법, 그리고 흑설탕의 소비기한까지. 설탕의 모든 것을 알려드립니다.
오래된 설탕, 먹어도 될까? 유통기한과 올바른 보관 방법

설탕에 유통기한이 없는 진짜 이유 (feat. 올바른 보관법)
주방 찬장 깊숙한 곳에서 몇 년은 묵은 듯한 설탕을 발견하고, “이거 먹어도 괜찮을까?” 하고 고민해 본 적 있으신가요?
빵, 과자, 떡볶이 등 우리 식탁에 빠지지 않는 설탕. 하지만 대부분의 식품과 달리 설탕 포장지에는 소비기한이나 유통기한이 적혀있지 않습니다. 과연 설탕은 썩지 않는 불멸의 존재일까요? 놀랍게도 그 비밀은 미생물조차 살 수 없는 극한의 건조함, 즉 ‘수분활성도’에 숨어있습니다.
지금부터 설탕이 시간을 이기는 과학적 원리와,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한 올바른 보관 방법, 그리고 모든 설탕이 똑같지는 않다는 사실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설탕이 썩지 않는 과학적 비밀, ‘수분활성도’
대부분의 식품이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이유는 박테리아, 곰팡이, 효모와 같은 미생물이 번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미생물이 살아가는 데는 반드시 ‘물’, 즉 수분이 필요합니다.
미생물이 살 수 없는 설탕의 환경
설탕이 부패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미생물이 활용할 수 있는 수분이 거의 없는, 극한의 건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식품 과학에서는 이를 ‘수분활성도(Water Activ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 수분활성도란?: 식품 속에서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물’의 양을 0에서 1 사이의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미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 미생물 생존의 한계:
- 대부분의 세균은 수분활성도 0.85 이상에서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 효모는 0.88 이상, 곰팡이는 그나마 건조한 환경에 강하지만 최소 0.65 이상이 필요합니다.
- 설탕의 수분활성도: 고도로 정제된 설탕은 수분 함량이 0.04% 수준으로 매우 낮아, 수분활성도가 미생물 생존 한계치보다 훨씬 낮습니다. 즉, 설탕은 미생물에게 물 한 방울 없는 사막과도 같은 환경이라 부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물리·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에, 현행 식품위생법상 설탕은 소비기한 표시를 생략할 수 있는 품목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잠깐, 모든 설탕이 영원하지는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모든 설탕이 같은 특징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제 과정이 만든 불멸의 백설탕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하얀 백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추출한 원당의 불순물과 수분을 거의 완벽하게 제거하는 정제·결정화·건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흑설탕은 예외! 소비기한 확인 필수
하지만 갈색 설탕이나 흑설탕은 다릅니다. 이들은 정제된 백설탕에 당밀 시럽이나 캐러멜, 흑당 등을 다시 첨가하여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수분 함량이 백설탕보다 높아지게 되고, 이는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듭니다. 따라서 흑설탕과 같은 가공 설탕은 포장지에 보통 2~3년의 소비기한이 별도로 표시되어 있으니, 구매하거나 사용할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오래된 설탕, 똑똑하게 보관하고 활용하는 방법
유통기한이 없는 백설탕이라도 잘못 보관하면 품질이 변해 사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설탕의 가장 큰 적, 습기
설탕은 주변의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매우 강합니다. 습기를 머금은 설탕은 서로 엉겨 붙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립니다. 또한, 주변의 다른 냄새를 흡수하기도 합니다.
올바른 보관법: 건조하고 밀폐된 곳
- 설탕을 보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습기가 없는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반드시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 용기에 담아두는 것입니다.
- 다른 식재료나 냄새가 강한 물건과는 분리하여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굳어버린 설탕, 전자레인지로 해결하기
만약 설탕이 이미 습기를 먹어 단단하게 굳었다면, 간단한 방법으로 다시 부드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 굳은 설탕을 내열 용기에 담습니다.
- 전자레인지에 넣고 10~20초 정도 짧게 가열합니다.
- 꺼내서 숟가락 등으로 가볍게 부수면 쉽게 부서집니다.
- 주의: 너무 오래 가열하면 설탕이 녹아 캐러멜처럼 변해버릴 수 있으니, 반드시 짧은 시간만 가열해야 합니다.
설탕에 유통기한이 없다는 사실은 흥미롭지만, 그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보관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주방의 설탕 보관 상태를 점검해 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그렇다면 소금에도 유통기한이 없나요?
A1: 네, 맞습니다. 소금 역시 설탕과 마찬가지로 유통기한 표시 생략이 가능한 품목입니다. 소금은 염화나트륨(NaCl)이라는 광물 그 자체이며, 수분활성도가 매우 낮아 미생물이 번식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듭니다. 오히려 다른 식품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로 사용될 정도입니다. 다만, 허브솔트처럼 다른 재료가 첨가된 가공 소금의 경우에는 유통기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Q2: 오래 보관한 백설탕의 색이 약간 누렇게 변하고 덩어리가 졌는데, 먹어도 괜찮을까요?
A2: 미생물이 번식하여 부패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 보관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습기나 냄새를 흡수하여 색이나 풍미가 변질되었을 수 있습니다. 덩어리가 진 것은 본문에서 설명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만약 낯선 냄새가 나거나 색이 심하게 변했다면 원래의 품질을 잃은 것이므로 섭취보다는 다른 용도(예: 스크럽 등)로 활용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Q3: 꿀이나 메이플 시럽 같은 다른 감미료도 유통기한이 없나요?

A3: 꿀은 설탕과 마찬가지로 당도가 매우 높고 수분 함량이 극도로 낮아, 미생물이 살 수 없어 사실상 유통기한이 없는 식품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메이플 시럽은 꿀이나 설탕보다 수분 함량이 높기 때문에, 개봉 후에는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하며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유통기한 내에 소비해야 합니다.